안녕하세요.
오늘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내용 요약
프롤로그
요즘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인 단어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행복을 그렇게 원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다른 책들과 달리 행복에 대해 다르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통상적인 책들의 접근과는 다른 차가운 이성적인 관점으로 접근해보려고 한다. 여타 다른 책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왜 인간은 행복을 경험할까?"하는 질문으로 다른 책과 차별점을 가지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인간의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했다. 세번째로는 인간의 최후 목표가 행복이 아니고 살기 위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점을 설명한다. 세번째 접근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부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1장 행복은 생각인가
삶은 본능과 이성이 싸우는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의 연속 속에서 인간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많은 책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가진 것에 감사하라" 등의 조언을 한다. 하지만 듣다보면 공허해지는 조언이다. 본질적으로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지기 어렵다. 행복은 사람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 특성 중 작은 작용이기 때문이다. 일부가 변한다고 해서 전체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빨간 사과가 앞에 있다. 우리는 사과가 빨갛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뇌가 만들어낸 경험으로 우리가 빨갛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과에 빨간색이 묻어 있다면 항상 빨갛게 보여하지만 색맹이 사람들은 사과를 빨갛게 보지 못한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를 이해해야 한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 일어났을 때 좋다라고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하는 것이다. 돈을 받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받은 경험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모두가 돈을 받는다고 행복해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왜 언제 뇌에서 발생하는지 알아야 한다.
뇌는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지만 이것이 꼭 생존에 필요한 능력일까?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성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경험 중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개팅에 나가 상대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거절하는데 여러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3분만에 내리는 동물적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뇌에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이 자신의 행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이다. 우리의 행동은 의식보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의식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의식적인 부분을 중요시한다. 이성적 사고가 탁월한 것은 맞으나 그것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식을 중요시하는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이성적 결정을 중요시하면 우리가 행복하기 힘들어진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심층적인 파악이 필요하다.
2장 인간은 100퍼센트 동물이다
인간은 경쟁하며 살아왔다. 우리 인류에게 경쟁은 생존이었다. 침팬지를 보면 알파 수컷을 제외한 다른 수컷들은 경쟁에서 지면 추방당했다. 암컷과 짝짓기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섬에 남자 20명, 여자 20명이 살았다. 나중에 그 섬의 자식들의 유전자를 보면 엄마는 20명이지만 아빠 10명으로 판명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번식 때문에 항상 경쟁하며 살아왔다. 여자의 경우는 그래도 경쟁을 피할 수 있어 인간지향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남성의 경우 모 아니면 도 전략을 펴야 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생존과 행복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행복은 뇌에서 만드는 소리라고 전 챕터에서 이야기했다. 뇌는 우리가 토익 점수를 잘 맞거나 암산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뇌는 우리 조상들이 치열한 생존에 대한 팁을 심어놓은 부분이다. 21세기와 맞지 않는 생존방법이 섞여있지만 뇌에는 수백만년 간의 생존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다. 인간은 싸우면서 생존한 시기가 대부분이다.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것은 6000년전이고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진 것이 600만년 전이다. 인간이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은 몇 년도 안되는 시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동물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은 자신들이 동물이 아닌지 알고 있다.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다 600만년동안의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인간 문화에서 근친관계는 금지되어 왔다. 돌연변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연구가 흥미롭다. 여대생이 가임기일 때 연락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기간에 연락한 사람에 대한 연구가 그렇다. 연락패턴이 크게 달라진 사람은 다름아닌 아빠였다. 가임기에는 아빠와의 연락이 줄어들다 그렇지 않은 기간에는 다시 원상태로 연락횟수가 복귀되었다. 가임기에 가까워지면 아빠를 조심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있다는 방증 아닐까?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혈연관계를 판단하여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양으로 판단한다. 어린시절 남매는 아니지만 같은 시절을 보낸 남녀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결혼할 확률이 거의 없다. 뇌에서 어린 시절 같이 보낸 시간이 많기 때문에 혈연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적 결정에 무기력하다. 이성적 판단은 동물적 결정을 이길 수 없다. 남자의 숫자보다 여자의 숫자가 많은 길거리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주면 남자는 수컷으로 변한다. 경쟁의식이 발동되는 것이다. 실제로 여자가 많은 도시에서 남성이 과소비하는 현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동물적인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런 점을 알아채게 해준 사람이 다윈이었다. 아마 모든 학자들이 다윈의 논문을 읽고 충격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윈의 논문을 읽고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행복하는 연구하는 사람들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제부터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3장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우리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모든 일들이 목적이 있어 보인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목적론이라고 한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목적론적 사고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나왔다. 삶은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면 궁극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일상의 모든 일들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자 한 명의 견해이며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지동설이 사실이었지만 그 당시 생각과 반한다는 이유로 코페르니쿠스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처벌을 받았다. 인간, 우주, 지구는 아무 이유없이 그냥 화학적이고 물리적인 반응으로 탄생한 것들이다. 이 사실을 주장한 사람이 다윈이다. 다윈은 진화론은 주장했다. 진화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대척점에 있는 이론이다. 이 책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중점으로 행복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행복은 생존, 번식욕구 등 원초적인 요소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이런 원초적인 모습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런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다윈은 모든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변형해왔다고 주장했다. 모든 생물들에게는 이론이 적용되었지만 공작새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아 그는 애를 먹었다. 공작새 수컷의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없었다. 생존에 아무런 필요도 없는 꼬리가 왜 진화된 것일까? 그는 고민 끝에 답을 끝내 찾아냈다. 공작새의 후세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짝짓기의 확률을 올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작새의 꼬리가 짝짓기의 확률을 올려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정말 짝짓기만을 위해서 그런 것일까? 실험을 위해 꼬리를 자른 공작새와 일반 공작새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연구결과는 꼬리가 잘린 공작새의 짝짓기 빈돠 2.5배 감소한 결과를 보였다. 공작새의 꼬리는 암컷들에게 자신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진화론은 우리의 생김새와 습성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모든 동물에게 적용된다. 심리학은 모든이라는 단어에 대해 협소하게 적용해왔다. 그래서 생존과 짝짓기가 인간의 마음과 무관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인간에게 창의성, 도덕성을 부여해준다. 하지만 마음 또한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마음의 창의성을 이용해 피카소, 바흐 등의 음악 악보를 남겼다. 그런데 음악 악보가 생존에 무슨 소용있겠는가? 그렇다면 창의적인 노력은 본질적으로 무슨 목적이 있는 걸까? 인간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짝짓기를 위함이라고 한다. 앞에서 예를 든 공작새의 꼬리가 인간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이 마음으로 독창성과 창의성을 뽐내는 이유는 짝짓기 때문이다. 세계 여성들은 남자 이상형을 뽑을 때 위트를 1순위로 본다. 위트가 생존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위트는 창의성의 표현이다. 공작새의 꼬리와 같이 암컷들에게 내가 이정도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피카소는 꾸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창의성이 폭발한 작품을 남기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을 때이다. 우리의 고차원의 정신적인 특징도 생존도구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피카소가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살아간 것이 아니다. 마음의 산물들이 사실 몸의 번성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행복도 마음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행복도 그냥 생존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닐까?
4장 동전 탐지기로 찾는 행복
인간이 현재 갖게 된 신체적 모습, 감정은 모두 생존위해서 변형되어 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인간의 생존에 어떻게 도움을 주었기에 발전되어 온 것일까? 심리학 지금까지 어떻게라는 질문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행복에 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목적론같은 허망한 대답이 아닌 진화론적인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동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은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가 한 마리 있다고 하자. 인간은 개를 훈련시켜 서핑을 타게 할 수 있다. 처음에 개는 서핑에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인간은 새우깡의 힘을 빌려 개를 훈련시킨다. 서핑을 타게 되면 새우깡을 주면서 훈련시켜 끝내는 서핑을 타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조형이라고 하며 새우깡을 강화물이라고 한다. 결국 개는 서핑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새우깡으로 인해서 서핑을 타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현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개는 왜 새우깡을 먹으려고 했을까? 새우깡을 먹게 되면 쾌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마지막은 서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해보자. 인간이 생존을 하기 위해 필요했던 행동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행복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한 것처럼 인간은 행복을 얻어서 생존하는 것이다. 행복하다는 감정이 있어야 인간은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사냥을 나간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후손들이다. 호모사피엔스는 틈만나면 짝짓기를 하려고 했으며 또 그것을 위해 사냥을 나갔다. 그들이 이렇게 했던 이유가 자아실현을 위해서인가? 성취를 위해서인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그것들을 할 때마다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했던 것뿐이다. 이 강렬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짝짓기를 하고 사냥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생존하게 된 것이다. 쾌감 때문에 모든 것이 진행됐을 뿐이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번식과 생존 때문이다. 목적론적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라는 작은 시점에서 좁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과 생존을 주객전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뇌는 쾌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쾌감을 찾아 헤맨다. 우리는 쾌와 불쾌라는 감정을 느낀다. 행복의 핵심은 불쾌보다 쾌를 더 많이 느끼는 것이다. 쾌락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불행하다. 우리는 한번 쾌감을 느끼면 그 때의 장소, 사람, 물체를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쾌감을 느끼기 위해 행동한다. 쾌라는 감정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하라고 알려주고 불쾌라는 것은 생존에 위협이 되니 피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뇌는 쾌감을 이용해 뭔가를 찾도록 도와준다. 그것을 찾으려는 의욕과 얼마나 목표에 접근했는지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어떤 것에 접근했을 때 확실하게 행복해질까? 뇌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5장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을 경험한다. 왜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그것은 서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올라간다. 현대인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암과 사고가 아니다. 사망하는 이유는 대부분 외로움 때문이다. 동료와 함꼐 있으면 식량을 확보하기 쉬워진다. 식량을 얻지 못하며 동물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 동물에게 있어 짝짓기는 필수이다. 인간의 뇌는 무엇을 위해 설계되었을까? 저명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에 따르면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인류학자인 던바 교수에 따르면 집단의 크기가 커졌을 때 인간의 뇌가 가장 커졌다고 한다. 집단이 커지면서 낯선 이와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속내를 알아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타인 때문에 성장했다. 이것이 던바 교수의 사회적 뇌가설이다. 그래서 인간은 비사회적인 부분에 대해 뇌를 사용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뇌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이 사회적인 뇌를 잘 이용하는 자들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에게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는 곧 죽음이었다. 인간의 뇌는 고통을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리가 아프면 뇌에서 신호를 보낸다. 이와 같이 집단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생기면 뇌는 고통을 신호로 보낸다. 우리는 고통이라는 경험을 통해 생존해왔다. 우리는 뇌는 사회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비슷하게 느낀다. 우리는 신체적 고통을 진통제로 줄여나간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과적일까? 심리학자 드월은 사회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집단에게는 타이레놀 2알 매일 먹게 했고 한 집단은 약효가 없는 흰 알약을 주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타이레놀 2알을 먹은 집단에게서 사회적 고통이 줄어든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 고통을 느낀다. 뇌는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
우리는 많은 생존을 위해 쾌감을 느끼면 살아간다. 쾌감을 상실하면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먹을 때 음식으로부터 쾌감을 느낀다. 이 쾌감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하기 힘들다. 쾌감이 없다면 사냥을 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냥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인간은 쾌감을 선별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몸을 보존할 때 강력한 쾌감이 나타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 타인이었다. 인간은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나와 150명 정도의 작은 무리가 세상을 향해 걸었다. 그 작았던 숫자가 어느새 지구 구석구석에 정착했다. 정말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이 일을 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성 때문이라고 본다. 개별 존재로서는 별 볼일 없지만 모이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면이 있어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생존과 짝짓기이다. 인간은 복잡하게 대의 명분을 만드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 두 가지 최종 목표이다. 인간은 인간 때문에 생존했다. 인간의 뇌는 오로지 인간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우리 뇌는 인간에게서 느끼는 행복감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행복을 느끼고 더 나아가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서은국 교수의 생각이다. 밑은 학계에서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확고한 두 가지 생각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두 결론은 수 백편의 논문을 통해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설명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서은국 교수의 생각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6장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인간들은 대부분 어떤 것을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한다. 돈, 명예, 건강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우리는 행복이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오해한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아니다. 외부조건은 인간의 행복도에 10%밖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10%를 위해서 90%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외부적인 조건들도 어느 정도 중요하지만 과도한 기대와 투자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돈과 행복의 관계는 본인의 경제 수준에 따라 다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GDP는 행복수치와 관련있지만 일정 GDP에 도달하면 더 높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부유해질수록 행복을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것을 리처드 이스털린 학자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했다.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는 돈이 더이상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당첨되지 못한 사람을 1년 후에 조사했을 때 그들이 행복도는 거의 비슷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감정이라는 것이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이 지속적이면 안된다. 인간은 적응이라는 강력한 현상 때문에 감정을 오래 가져가지 못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하기 떄문이다. 좌절과 시련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이 기쁨도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최근의 일들만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서은국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겪은 후 이것이 영향을 미치지 시간은 3개월이었다. 시간은 행복과 슬픔을 금방 지운다. 그리고 감정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감정을 한 번 경험하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하여 왠만한 일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소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돈이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자극에도 관심을 덜 가지게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것에 많은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행복은 소소한 것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돈 뿐 아니라 건강, 외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외모를 예로 보자. 학생들에게 민낯으로 남에게 외모 평가를 받도록 하였다. 결과는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 눈에 자신의 외모가 이쁜지 아닌지는 행복과 관련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자신의 외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는 행복도가 달라졌다.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외모의 수준이 행복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이다. 행복은 소유다라는 생각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조건이 곧 행복이다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이 생각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것과 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삶의 조건들이 일상의 불편함을 제거해주만 일정 수준이 되면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정서 학자들은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에 기여하는 요인들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학 합격을 했을 때는 기쁘지만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는 그 순간에만 주목하지 그 뒤의 구체적인 많은 시간들에 신경쓰지 않는다. 지속성이라는 측면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놓치면 불행질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도하게 미래를 염려하고 기대한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우리는 적응이라는 녀석때문에 기대만큼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그런데 적응은 현상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4장을 다시 살펴보면 쾌감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이 활동한다. 고기를(쾌감) 먹기 위해서 사냥을 하고 생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쾌감이 사라지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고기를 먹기 위해 사냥에 나선다. 적응은 이렇게 쾌감을 느끼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정서의 본질적 관심사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이것은 반드시 초기화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 적응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많은 조건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행복감은 다시 초기화되기 때문에 조건이 행복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커다란 기쁨보다 여러번 작은 기쁨을 느끼는 것이 좋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7장 '사람쟁이' 성격
북타워에 여객기가 추돌하는 사고가 터졌다. 이에 여진이 발생해 남타워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북타워에 여객기 추돌한 것이니 남타워 사람들은 다시 남타워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이 때 일부는 남타워로 일부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타워로 또 다른 여객기가 추돌했다. 이들의 생존을 가른 것은 '성격'이었다. 우리는 성격이라는 것에 따라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성격은 평소에 누적되어진다. 보여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행복감을 보여지는 것에서 찾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는 유전이다. 키와 비슷하다. 이 학설을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행복은 유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외향성에 영향을 받는다. 일란성 쌍둥이를 살펴보면 이들의 행복도는 거의 비슷하다.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 그런데 우리는 유전이라는 요인이 보이지 않아 이것에 대한 증상에 집중하는 편이다. 만약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우 행복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잘 살펴본다. 그는 사람들에게 매우 인사를 잘한다. 사람들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사는 증상일뿐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을 과장하는 것과 같이 과장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유전적 요소가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일까? 행복과 유전을 연결하는 가장 큰 연결고리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외향성에 따라 개인의 행복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이 사실은 어떤 연구에서 실수로 발견되었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외향성이 높을 수록 자기확신이 높고 자극을 추구하고 처벌을 피하는 거솝다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데 초점을 둔다. 사람이 사람을 찾는 이유가 자극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타고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첫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 그들에게 주목해야할 점은 사회성이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사회성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향적인 사람들의 행복는 어떨까?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사람도 타인과 함께 하면 더 행복할까?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해 했다. 왜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까? 이유는 불편해서다. 사람에게서 오는 자극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하게 반응할 뿐이지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자신의 자원을 사람과 관련된 곳에 사용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공연이나 여행 등에 지출이 많았고 불행한 사람들은 옷이나 물건 등 물질에 소비가 많았다. 물질을 사서 맛보는 재미는 사람을 만나 맛보는 재미에 비해 금방 사라진다. 물질과 경험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혼자 보는 것과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서 게임기를 구매하는 예시를 살펴보면 그렇다.
어떤 연구를 살펴보면 돈을 나에게 사용하는 것보다 남에게 사용할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결과가 있다. 이것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원 봉사자들이 시간을 남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행복도가 높다. 그렇다면 왜 사회성이 높으면 행복도가 높을까?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하기 떄문이다. 남을 돕는 것은 장기적으로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여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해다. 이 손실감을 상쇄하는 강력한 보상이 즐거움이다.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나를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와 생존을 동일시한다. 추위는 위험하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뜻하면 안전하고 친구라는 생각이 있을 수 도 있다. 그러면 외로우면 추워질까? 연구 결과 외루우면 추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외로우면 따뜻한 수프를 먹게 되며 일시적으로 외로움을 덜 느낀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보면 경사진 코스를 보게 된다. 그렇게 이런 코스를 친구와 함께 보면 완만하게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행복은 선천적 기질인 외향성과 사회적 경험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사회적 경험은 왜 이렇게 크게 행복도에 기여할까? 이전 장에서 인간은 쾌감 같은 정서를 이용해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환경이나 자원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또 우리의 뇌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으로 우리는 유도한다. 우리가 생존을 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을 찾는다. 그래서 뇌는 사람과 손을 잡거나 함께 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에게는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타인과 교류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8장. 한국인의 행복
행복은 외향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외향성 뿐 아니라 인간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문화란 공유된 이해다. 규범이나 행동방식에 대해 구성원들간의 암묵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공감대가 형성된다. 문화에 따라 비호감이나 식사예절이 달라진다. 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수용하는 문화는 우리가 행복해지기에 좋은 조건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는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낮다. 이 국가들의 행복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알아야한다. 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행복이 상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어떤지 살펴봐야한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에서는 집단주의 성향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개인의 행복보다 집단의 행복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행복도를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이다. 아무리 경제수준이 높아도 개인주의가 아니라면 행복도는 낮을 수 밖에 없다.
왜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보다 행복도를 더 느깔까? 가장 큰 이유는 심리적 자유감이다. 자유감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다. 이런 자유감을 극대화시켜주는 문화를 가진 나라의 사람들이 행복도가 높다. 한국은 이런 자유감이 낮은편이다. 타인 중심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전 장에서 설명한 '사람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와 다르다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집단주의가 강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오히려 행복도가 낮다는 것이 재밌다. 이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불행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집단주의는 개인의 자유감을 낮춘다. 집단주의의 획일적 사고는 행복도를 줄인다. 행복에도 여러 조건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또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면 살게 된다.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는 것은 인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행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 나라는 물질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에 비춰지는 것에 예민하다. 돈은 행복이 아니지만 대체제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사냥을 잘하는 타인에게서 식량을 얻으면 될 일을 돈으로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으로 대체한다. 돈이 많으면 사람에게 관심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돈이 많으면 너희 없
이도 혼자 살 수 있어 하는 자기 충만감이 높아진다. 과도한 돈에 집착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사람이 곧 행복인데 말이다.
과도한 타인에 대한 의식은 사람 관계를 즐겁지 못하게 한다.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한국은 깊은 편이다. 행복이 되어야 할 타인을 경쟁대상으로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되 나와 깊은 연대감을 맺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 자신의 '진짜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 나 혼자서 유아독존으로 살 필요까지는 없다. 사람은 행복의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9장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오컴의 날이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과 개념을 베어내자고 오컴이 만든 용어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생존의 욕구가 채워져야 마지막 5단계인 자아 실현의 욕구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 지속되면서 이것이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장황하게 설명하던 부분들이 오컴의 날로 베듯 간명해진 것이다. 우리가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룩하려고 하는 이유가 생존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따라 장황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주장한 가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하고 계속 이렇게 살아왔다. 행복은 도덕적 지침이 아닌 쾌락적 경험이다. 행복한 사람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고 구체적인 경험이다. 행복은 생각이 아니다. 또한 행복에 대한 이해가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한국인 가장 행복감을 느낄 때 먹을 때와 대화할 때 두가지라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포스팅을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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