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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장 사랑의 이론 1부

by 신수토기종삼 2024. 3. 27.

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2장 사랑의 이론 1부를 읽었는데요.

1부는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간략한 내용과 읽으면서 든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사랑의 이론 1부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

인간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애착은 동물과는 다르다.

동물의 애착은 단지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실존주의와 연관된다.

인간은 분리되어 있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분리는 불안의 원천이다. 사람은 분리상태일 때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는다.

아담과 이브 신화를 살펴보면 자유를 얻은 상태에서 아담과 이브는 수치심을 알게 된다.

이것은 서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을 인지하였지만 사랑으로 다시 합쳐지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수치심일 것이다.

이 수치심으로 죄책감과 불안이 생긴다.

이 분리 상태의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해왔다.

그것들의 역사 속에 남아있다.

유아는 엄마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합일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엄마는 유아의 하나의 세계이다. 인류도 초창기에는 자연과 합일을 유지하려고 했다.

동물의 탈을 쓰는 등의 행동이 이것의 근거이다. 유아든 인류든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분리 상태를 인지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갖가지 다른 방법들을 사용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마약을 복용하는 것이었다. 마약을 복용하면 잠시나마

우리는 외부세계와 단절되고 분리감을 경험하지 않게 된다.

과거에는 이런 방법을 집단적으로 행한 적도 있다.

과거 집단의 난행 의식이 대표적인 예시이며 과거에는 이것이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의식이 진행됨에 따라 분리에서 오는 불안감과 수치심이 줄어들었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도취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 시대에는 이런 집단적 난행 의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비도취 시대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뿐이다.

잠시나마 분리상태를 벗어나지만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더욱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분리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성적 오르가슴이 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성적 오르가슴은 알코올과

마약과 같이 금세 같이 분리감이 있는 상태로 돌아오게 한다.

도취적 합일의 형태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1. 강렬하고 심지어 난폭하다는 것
  2. 퍼스낼리티 전체에 몸과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
  3.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라는 것

도취적 합일과 반대되는 합일의 형태는 집단과의 합일로 나타난다.

인류는 조금씩 집단과의 합일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독재체재, 민주주의가 그 형태들이다.

독재체재는 공포, 위협으로 민주주의는 암시, 선전으로 합일을 이루어왔다.

서로의 의견을 일치시켜 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독재체재와 달리 불일치가 가능하다는 점이 약간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군중과의 합일을 통해서 그동안 분리감으로부터 해방되어 왔다.

또 인간은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 합일을 유지해 왔다. 금속을 제련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조적인 활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현대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임을 잊을 듯싶다.

우리는 도취적 합일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대인간적 융합을 배워야 한다.

도취적 합일은 일시적인 것에 반한 대인간적 융합은 우리에게 분리감을 해결하기 위한 답을 내려준다.

융합이라는 것은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융합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사랑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대인간적인 융합을 위한 신중한 형태의 사랑과 공서적 형태 사랑이 그 두 가지이다.

우선 공서적 합일부터 설명하자면 유아를 예를 들 수 있다.

유아는 엄마에게 의존하여서 자란다.

육체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만 정신적으로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사랑으로 빗대어 표현하면 마조히즘과 사디즘으로 나누어 표현할 수 있다.

마조히즘은 누군가에게 완벽히 독립되어 있지 못하고

그 누군가의 일부가 되어서 분리감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는 명백히 사랑이 아니다. 사디즘은 마조히즘과는 반대로의 개념이다.

누군가를 굴복시키고 완벽히 지배하려는 성향의 사랑 인 셈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공서적 합일의 종류라고 볼 수 있다.

활동이라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점을

활동이라고 하는 것은 근대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능동적인 것만을 활동이라고 지칭한다.

그런데 명상을 놓고 보자면 이는 수동적인 활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명상이야말로 최고의 활동이다.

자기 자신의 힘을 의식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활동인 셈이다.

사랑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준다는 행위를 잘 알아야 한다.

시장형 인간의 관점에서의 준다는 것은 손실을 의미한다.

이는 비생산적인 인간들이 하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적인 인간들의 관점에서의 준다는 것은 능동적인 활동이자

자기 자신의 힘을 의식하는 활동이다.

성적인 관계 시 남자는 절정에 다다르면 여자에게 정액을 준다.

이를 주지 못하는 자는 성 불능자에 속한다.

여자도 복잡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 안에 힘을 의식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는 생산적인 자가 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칠게요.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장 사랑의 이론 1부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2장 사랑의 이론 1부